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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감정의 쓸모
_이병률
1
조금만 천천히 늙어가자 하였잖아요 그러기 위해 발걸음도 늦추자 하였어요 허나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질 않아 등뼈에는 흰 꽃을 피워야 하고 지고 마는 그 흰 꽃을 지켜보아야 하는 무렵도 와요 다음번엔 태어나도 먼지를 좀 덜 일으키자 해요 모든 것을 넓히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한번 스친 손끝
당신은 가지를 입에 물고 나는 새
햇빛의 경계를 허물더라도
나는 제자리에서만 당신 위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하나의 무의미예요
나는 새를 보며 놓치지 않으려 몸 달아하고 새가 어디까지 가는지 그토록 마음이 쓰여요 새는 며칠째 무의미를 가로질러 도착한 곳에 가지를 날라놓고 가지는 보란듯 쌓여 무의미의 마을을 이루어요 내 바깥의 주인이 돼버린 당신이 다음 생에도 다시 새[鳥]로 태어난다는 언질을 받았거든 의미는 가까이 말아요 무의미를 밀봉한 주머니를 물어다 종소리를 만들어요 내가 듣지 못하게 아무 소리도 없는 종소리를
2
한 서점 직원이 한 시인을 사랑하였다
그에게 밥을 지어 곯은 배를 채워주고 그의 옆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살아지겠다 싶었다
바닷가 마을 그의 집을 찾아가 잠긴 문을 꿈처럼 가만히 두드리기도 하였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이를 문장으로 문장으로 스치다가도 눈물이 나 그가 아니면 안되겠다 하였다
사랑하였다
무의미였다
[출처] 이병률 , 고양이 감정의 쓸모|작성자 아쇼이
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간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 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즐거운가, 과장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한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 번 꽃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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