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을 빼고 냉정히 생각해 보면..

자신이 할 말을 기호화된 단어에서 못 찾았다거나 부족하다 싶은 경우..

그래서 못 견디겠다 싶은 경우에 다른 표현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기호화된 표현 방법은 이미 의미가 고정되어 개별화 될 수 없음으로 자신의 느낌을 정확히 나타낼 수 없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느낌이 기호화 된 것도 이유는 있다. 즉 많은 사람이 자신의 느낌을 기호화 시킴으로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것은 느낌의 공유와 더 큰 상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느낌을 나누고 공감 받아야 위로를 받는 사람의 속성상 자신의 느낌을 기호화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공감을 받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호화된 느낌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새로운 표현을 하게 된다. 그것이 말이건, 글이건, 어떤 방식의 예술이건 말이다. 그 방식 또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받는다면 기호화될 수 있다. 한가지의 예를 들면 카프카와 같은 경우 그의 느낌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방식이 있음에도 "카프카적이다."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조금 웃긴 예이지만..

이러한 표현 방식을 잘 알고 있다면 혹은 자기 자신이 만든 표현이라 해도 계속 쓰고 이해하다 보면 또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마 "진부함"이라는 것도 이런 감정일 것이다. 잘 표현은 했지만.. 뭔가 자신의 것과 정확히 맞지 않는..

그것을 느끼는 순간 아마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느낌을 나타내려 할 것이다. 그것이 이전 방식의 연장이던, 아니면 단절이던 자신의 느낌을 훨씬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직접적이다." 라는 말과 "진부하지 않다." 라는 말은 물론 세밀히 분류하면 다르겠지만.. 그 원인이나 결과로 나오는 상태를 보면 비슷하거나 같은 말은 아닐까? 물론 둘 다 철저히 주관적이어야 겠지. 어떤 이에게 처음 보는 표현은 다른 이는 질리도록 써왔을 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