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들 노골적으로 그의 시선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할 수도, 그들에게 분노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가장 소중한 관계들이기 때문이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그는

자신마저 미워할 수도, 또한 연민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관계에게서 거부 당하고

또한 그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에 절망하며,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시선이 느껴지고, 

그의 시선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이나 안타까움 보다 공감을 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관계를 가져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관계를 거부 당할 때 느끼는 그 상실감을,

분노조차 할 수 없는 그 무력한 마음의 절망을...


그의 사진은 놀랄만큼 솔직하고 정확하게 그 상태를 기록하였다.

그래서 사진 속의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볼때면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하며,

또한 내가 상실감을 느꼈을 때 보았던 시선들이 겹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의 사진은 자신 만의 시선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과 다른 이의 공감을 얻어내는 보편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실 그의 사진을 보며 공감하는 것은

그는 상실감을 느낄 때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셔터를 눌러 자신의 시선을 기록하는 것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마저 그렇게 기록하는 것 외엔 남길 방법이 없었다.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까..

그에겐 그 시기를 기록하고 정리하여 전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실상 그는 나의 스승이다.

나에게 사진이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뿐더러,

나의 마음과 느낌을 솔직하게 이해해 주고 표현하도록 이끌어 준 마음의 스승이다.

그와 사진에 대해 얘기할 때는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심지어 새벽을 넘기고 첫차를 타고 간 적도 많았다.

어찌보면 억지에 가까운 내 얘기와 사진을 들어주고 봐주면서 일일이 대답해 주었던 훌륭한 스승이었다.


허나 사진에 대해 말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늘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마디 말로, 혹은 여러가지 강의로 사진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짓이다.

그는 상대가 그의 한마디를 얼마나 이해하는지 항상 살폈고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사진을 말로 전달한다는 건 늘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나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사진을, 그의 작업을 전시로 본 다음에야 난 내가 오해하고 있던 부분이 무엇이라는 것을, 또한 그것이 이 사진으로 이해되었음을 알았다.

실상 밤을 샐 정도의 많은 말보다 더 좋은 가르침은 실제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에서 솔직함이라는 것, 정확함이라는 것, 기록이라는 것의 의미를 너무나 직접적으로 "이거야" 하듯이 배울 수 있었다.

역시 그는 참 좋은 스승이다.


P.S. 스승의 전시에 이런 허접한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란 것은 안다. 하지만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스승의 사진이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이상하게 평가 받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보다 내가 느낀 그 느낌을 그냥 얘기하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