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기억의 파편 2011. 10. 30. 02:01


2011년 10월.. 일기 2011. 10. 13. 00:12
어떤 이에겐 결실의 계절이.. 다른 이에겐 상실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10월이다..
 
2011년 9월.. 일기 2011. 9. 24. 15:03
될대로 되라지..

 
이로써 작년 4강 감독들은 모두 바뀌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긴 했는데..
자연스레 바뀐 것 같지 않아서 좀 찜찜하다.
구단에 의해 만들어지는 판인 듯 하여 좀 그렇다..

다음날 sk는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 이만수 감독대행으로 교체하였다.
여러 모로 씁쓸함이 남는 사건이다.
결국 프로야구는 기업의 홍보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2011년 6월.. 일기 2011. 6. 28. 10:06

오늘은 직구.. 직구 승부다.

2011년 5월 일기 2011. 5. 30. 10:41
푸르지도 밝지도 기쁘지도 않겠지만...

그대가 이 편지를 읽을 즈음에

나는 아마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쓰고 또 쓰다 지우고 또 지우길 반복하는 그 단어에

나의 진심이 지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아마 이 편지를 읽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가 이 편지를 본다는 것은 나를 잊지 않았다는 뜻이므로

그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그대에게 쓰는 편지는 그렇게 사라지겠지요.


그대를 보며 가슴 뛰던 그 시간이

가끔 너무 생생히 떠오를 때가 있었습니다.


허나 지금 나에게 그대는 

그저 학교 나무 책상 위 긁혀진 몇 년 지난 낙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그마한 상처들을 입힌 기억에

자책하며 밤을 지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깊은 바다의 표면에 일어나는 가벼운 파도 같이 지나갈 뿐입니다.


어쩌면 그리운 것은 햇살 비치던 말로 표현할 수 없던 그대의 아름다운 뒷모습보다

찌질하게 울며 사과하는 내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그 잔잔한 물결마저 없어지는 날에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들겠지요.

사랑... 합니다...

그대와 함께한 순간 뿐 아니라 그대와 이 땅에서 같이 숨 쉬는 모든 순간을.. 

2011년 4월 일기 2011. 4. 30. 23:59
희망과 불안 그 사이에서..
 
#1
"어떻게 교육 재정이 10%도 안되지? 국방비엔 그렇게 많은 비용을 쓰면서.."
그 선배는 열변을 토했다.
"이건 국가에서 교육을 포기했다는 거야. 이 상태로 몇 년이 가면 손 쓸 수가 없을 거라고.."
평소 답지 않은 그 선배의 태도를 보며 난 그 선배가 예쁘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가자. 이대로 있을 순 없어."
사실 난 어떻게 되도 좋았다. 등록금 투쟁에 교육 재정 운운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고 100만원도 되지 않는 국립대 등록금이 비싼지도 몰랐다. 단 당시 우리 집에서 내기엔 벅찬 금액이었기에 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순순히 그 선배의 뒤를 따라 본관 앞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했다.

#2
어떻게 어떻게 석사를 마치고 1년 정도 직장 생활로 겨우 석사 때의 학자금을 근근히 갚았다. 하지만 직장을 나오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전전하느니 박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외국으로 나가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고, 한 학기가 지난 이후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의사는 아니지만 의대였으므로 난 700만원이 넘는 학자금을 대출해야 했으며 그 이자도 사실 그렇게 싼 건 아니었다. 그저 은행 금리.. 더구나 그 당시의 은행 금리도 정말 비쌌다. 그러기를 세차례.. 뭐 좋은 곳에 취직하면 일년 연봉도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계산해 보면 이자에 원금, 그리고 연봉을 100% 쓸 수 없으므로 이것 저것 생각해 보면 한 5년 고생 해야 겠다 싶다. 나이도 있고, 주변을 보면 나처럼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이 돈은 정말 무겁다. 가끔 꿈을 꿀 수 있는 최소의 비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겐 이 비용이 없이는 꿈도 제대로 꿀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부담감이 쌓여간다.

#3
내가 뽑은 대통령의 어두운 표정이 뉴스 화면에 잡혔다. 아니 침통한 표정이었다고 할까. 바로 사학법 개정이 국회에서 부결된 순간이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 하는 그 때부터 사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터지기 시작했다. 두산과 중앙대, 그리고 각 사학의 부동산 문제.. 그리고, 청소부 아주머니나 학내 시설 관리의 외주 문제..
 
#4
주변 친구들도 그랬고, 모두들 대학 다닐 땐 정신없이 바빴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고, 등록금에 용돈 벌어 쓰려면 방학도 없었다. 쌓을 수 있는 스펙이라고는 고작 토익, 혹은 다른 자격증, 외국 교환학생. 그나마 그것도 국립대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수원에 올라 왔을 땐 처음에 모두들 자취생이었다. 그저 공부가 좋아서였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내 주변엔 사립대를 다닌 후배들로 둘러 쌓였다. 대학 얘기를 들어보니 모두들 장난 아니다. 기본이 일년씩 미국이나 호주에 어학 연수를 다녀왔고, 스펙도 장난이 아니다. 다들 차 몰고 다니는 게 기본이고, 얼마 전 어느 친구는 결혼해야 한다면서 집도 사더라.. 갑자기 갭이 느껴졌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결국 사회 나가면 그 친구들은 스펙 좋고 경력 많아 유리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대학 다닐 때 뭐했냐는 핀잔과 함께 낙오자 취급 당할게 분명했다. 스펙을 쌓기 위해서도 최소한의 비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5
 트위터에 알려진 진보 잡지의 기자가 88만원 세대 운운하길래.. 그래 이 분은 좀 우릴 알아주겠지..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도 88만원 세대의 비애니 어쩌니 하는 말을 들이대는 걸 보고 아주 실망해 버렸다. 너한테는 그저 기사거리 하나 정도지만 우리한텐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2011년 3월 일기 2011. 3. 31. 23:59